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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무료게임다운로드 살인으로 이어진 ‘관계성 범죄’…범죄전력 없어도 강력범죄로 번졌다[플랫] |
| 내용 | 무료게임다운로드 살인 범죄로 이어진 관계성 범죄의 절반 이상이 사전에 피해자의 신고가 없거나 전과 1범 이하의 가해자가 저지른 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재범 위험성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2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벌어진 살인 범죄(기수·미수·예비 등 포함) 사건 388건 중 70건에서 사전에 관계성 범죄(가정폭력·아동학대·스토킹·교제폭력)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자는 남성(59명), 피해자는 여성(56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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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40건(57.1%)은 살인 사건 발생 이전에 신고·수사를 한 이력이 없었다. 가해자가 전과가 없거나 1범인 경우도 40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살인 사건 피의자 795명 중 전과가 없거나 1범인 경우(375명·47.1%)와 비교하면 초범 비율이 높다.
경찰은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부부·연인 등 친밀했던 관계에 기반한 관계성 범죄에서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어 위험 요인이 높고 재범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또 범죄 전력이 없어도 비교적 빠르게 살인 등의 강력 범죄로 비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피의자가 진술한 범행 동기는 단순 의심을 포함한 외도(25.7%), 말다툼·무시(14.3%), 이별 통보·만남 거부(12.9%) 순으로 나타났다. 접근금지 처분 등 경찰이 개입한 데 대해 보복하기 위한 범행(7.1%)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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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런 범행 특성에 따라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인 신고를 하도록 하고, 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접근금지 조치를 해도 범행을 저지른 사례(7건)도 있어 가해자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가해자·피해자 분리를 위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게 하거나 유치장에 유치하는 조치도 적극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전화·문자 등으로 연락할 경우 자동으로 인식해 경찰에 통지하도록 하는 자동신고 앱을 개발해 배포할 계획이다. 또 관계성 범죄 사례를 AI 기술로 분석해 재범 위험 평가 등에 활용하는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주거·생계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를 주저할 수 있다며 사건을 초기에 접하는 단계에서 피해자를 위한 긴급 보호·지원이 이뤄지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는 피해자가 관계성 범죄에 따른 치료·생계·거주이전 등에 필요한 지원을 받으려면 경찰서 조사 이후 별도로 검찰에 다시 신청해야 한다. 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전체 예산 945억원 중 경찰에 배정된 건 약 6%인 57억원 뿐이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은 “그동안 위험성 판단을 잘못한다는 비판도 있었다”며 “앞으로 피해자 보호를 더 두텁게 하도록 과학적인 방법도 동원해 대책을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전현진 기자 jjin23@khan.kr
지자체 지능형교통체계(ITS) 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는 경기도의원들이 구속됐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뇌물수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현직 경기도의원 A씨 등 3명을 포함한 총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고 27일 밝혔다.
A씨 등은 업자인 B씨로부터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안산시 ITS 구축 사업 과정에서 편의를 받는 대가로 안산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경찰은 B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현직 도의원인 A씨 등에게 로비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A씨 등은 B씨의 청탁에 따라 ITS 구축 사업 관련 특별조정교부금(특조금)이 지역구에 배정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 등에 대한 수사를 마치는 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한편 다른 지역의 ITS 사업에 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미 동부시간으로 25일 낮 12시40분(한국시간 26일 오전 1시40분)에 시작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정오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이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회담을 마친 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오찬을 겸한 회담을 이어갔다.
정치의 본질은 지배와 저항이다. 대표자 선출 절차가 잘 지켜졌느냐 아니냐도, 공약과 정책이 좋으냐 아니냐도, 좋은 정부냐 아니냐도 모두 지배와 저항의 문제이고 그런 문제여야 한다. 그래서 정치의 시대적 특성은 지배와 저항 사이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정치의 좋고 나쁨은-특히 민주주의 정치의 좋음은-지배의 힘을 줄이고 저항의 힘을 키워, 부와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보통사람들의 자유를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에 달려 있다. 즉 보통사람들의 삶이 부와 권력에 과도하게 지배받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부터 자유롭다는 느낌이 드냐”는 물음에 당신은 어떻게 답하는가? 자유롭다고 느낀다면 정말 행운아다. 두 가지 부류 중 어느 하나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세상만사에 의도적으로라도 거리를 두고 살고 있거나 무관심한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만사와 연결돼 있다 해도 자기 마음대로-다 이루지 못한다 해도-세상만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언제 어디서든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에서 탈주할 여력을 보유한 사람이다. 둘 다 만만치 않은, 그야말로 능력자다. 전자가 강한 정신력 보유자의 승리라면, 후자는 풍부한 물질적 자원 보유자의 승리다. 물질적 승자 모두가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정신적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정신적 승자는 때때로-속세를 완전히 떠난 ‘도사’가 아닌 한-물질적 승자이기도 하다. 적어도 물질적 패배자는 아니다.
보통사람 대다수는 두 부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한다. 촉각을 곤두세워 세상만사를 살피며 먹고살 방책을 끊임없이 찾아내야만 한다. 탈주의 여력도 영향력 있는 부와 권력도 갖고 있지 못해서다. 그런 우리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서민(庶民)’이다.
서민은 소박할 뿐만 아니라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는다. 왜 소박하고 가엾냐고? 뭔가를 숨기고 꾸밀 만한 자원과 힘(부동산, 주식, 지위와 권력 등)을 갖고 있지 못해서다. 더 나아가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괄시받고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는 느낌, 즉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은 좌절감과 절망감을 낳는다. 그래서 또 가엾다. 누군가가 가엾게 여긴다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감지한다는 존재의 특성을 갖는다. 그런 존재 특성의 감지를 ‘서러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러운 존재의 대표적인 경우가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못한 ‘노동 약자들’이다. 산업재해와 그에 대한 방관은 서민들의 삶의 가엾음과 서러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자유로운 느낌’의 여부가 중요
대형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책’의 자리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자기계발서란 무엇인가? ‘홀로’ 정신의 승자가 되거나, 물질의 승자 혹은 그 둘 다가 되는 ‘능력 함양의 방법’을 담은 책일 뿐이다. 누가 그 책들을 사볼까?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이미 승자인 사람들이 볼 턱이 없다. 승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누구인가? 아직은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좋게 말하면 의욕과 열정의 보유자고, 나쁘게 말하면 욕망에 휩싸여 있는 이들이다. 혹은 의욕과 열정과 욕망을 갖고픈 이들이다. 아무튼 아직은 자유를, 적어도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길 갈구하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지배받는 자는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싶은 ‘아직은 서민이 안 된 자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대부분 역시 가엾다. 자기계발서 열독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서민의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다른 누군가(무능력자)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채, 나 홀로 능력자가 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착각’에 있다.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창안하고 지속시키는 자들이 아닌-그저 따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이유는 그들 덕분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은 외부 강제 때문에 자기 고유의 내면이 부재하거나 흐릿해져 있다는 존재 상태의 감지에서 비롯한다. 그런 내면의 상태를 문제 삼게 되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좌절과 절망의 느낌은 외부의 힘에 대한 체념 어린 순응 혹은 ‘과격한 단절’의 기도와 실행으로 이어진다. 과격한 단절의 기도와 실행은 때때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저항의 정수’가 되기도 한다. 좌절과 절망이 서민들 사이에서 퍼질 대로 퍼지고 극에 달해, 자신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지배 질서를 어떤 식으로든 혁파해야겠다는 ‘전복의 마음’이 들끓을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또 다른 좌절과 절망을 낳겠으나, 애석하게도 서민들 사이에서 그런 혁파와 전복의 마음이 들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희망의 원리>를 유토피아 담론의 탐색에서 찾으려 한 에른스트 블로흐가 귀띔해주었듯이,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혁명이 전쟁보다 드문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서민들은 대체로 내면의 상태에 둔감해지려고 한다. 내면의 상태에 민감하게 구는 것을 배부른 짓과 감정의 사치로 간주한다.
그런 때 인문적 고찰은 내면의 상태를 살피고 보듬는 인간 고유의 실천이 아니라, ‘유한계급의 교양-있는 척하는-놀이’가 된다. 혹은 내면보다는 외부가 강제하는 지배 질서의 이모저모를 정보 혹은 도구적 지식의 차원에서 습득해 지배 질서에 한층 더 잘 적응케 하는 자기계발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 와중에 자기 고유의 내면은 한층 더 흐릿해지고 공허해진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내면에는 자유롭다 혹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설 수 없다. 자유로움과 그렇지 못함을 느끼게 해주는 지배와 저항의 경계 자체가 외부의 힘으로만 가득 차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수업 때 학생들에게 묻는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자유롭다고 느끼냐고. 대부분 “느끼지 못한다”고 답한다. 그들은 극우냐 아니냐, (여)성차별주의자냐 아니냐 등을 둘러싸고 일어난 정체성 규명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는, 즉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에 직면해 있는 20대 청년들이다. 난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먼저 던져야 할 물음은 너는 누구냐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느끼냐” “정녕 홀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여기냐”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날의 자기주도성과 파란만장함이라고는 아직 찾아볼 수 없는 그들에게 정체성을 묻는 것은 너무 이르다. 누군가의 정체성과 이에 대한 자신과 타인의 인식은 적지 않은 사회적 관계와 시간과 경험의 축적과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한 이들에게 던져야 할 물음은 정체성 형성의 여정을 자유롭다고 느끼며 시작하고 있는지다.
약자에 연대와 협력 방법 알려줘야
시간과 경험을 이미 갖추었다는 오해 속에 자기정체성을 섣불리 규정하는 시건방진 이들도 있다. 대체로 부와 권력의 획득을 둘러싼 경쟁 과정을 주도하는 다른 누군가의 일방적 생각에-상업적 의도를 가진 각종 세대론과 같은 담론에-기댄 탓에 취약하고 시시한 자기인식일 때가 많다. 그런 시시함이 과잉대표돼 ‘20대 극우화론’ 같은 성급한 규정을 낳기도 하는지라 유의해 추려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유의해야 한다. 딱지 붙이기가 현실 정치의 유력한 무기임을 부정할 수는 없고, 그런 수단에 의존하는 정치가 횡행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자유의 힘을 키워야 하는 정치의 본래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하면 성급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정치인들은 단지 자유로움 여부에 대한 물음에서 그치지 않고 보통사람들에게 ‘지배받지 않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자유의 힘을 키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게 약자가 지배에 저항하는 유일한 길, 즉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의 미덕과 방법이다.
정치는 참으로 어려운 실천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그 지위를 얻은 이는 무척 많다. 하지만 긍정적 의미에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과 사람들이 기억하고 아는 국회의원이 많지 않다. 지배 그 자체를 혹은 부당한 지배조차 정당화하는 뻔뻔함마저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지배의 힘을 줄이고 보통사람들의 자유를 키우는 정의로움과 용감함은 그야말로 행하기 어렵다. 부와 권력에 맞서 자기 스스로 저항의 선봉에 서야 할 뿐만 아니라,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거라 여기며 낙담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홀로 자유를 얻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마저 설득해 저항의 일선에 설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수 사람의 마음과 지지를 힘겹게 얻어 이룬 부와 권력도 이리저리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의 세계에서 성공 사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올곧은 생각과 입바른 말을 내세웠던 사회 인사가 정치인이 되면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실패의 경우가 훨씬 더 흔하다. 그런데도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보통사람들의 마음과 존재 상태를 헤아리고 ‘지배받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데 경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지배자가 되려고 정치를 한다면 실족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의정부성범죄전문변호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