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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이름) | 황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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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KB증권주가 [일상 한 그릇]치킨 오어 포크? |
내용 | KB증권주가 출장 일정이 잡혀 비행기를 탔다. 내게 제안이 오는 해외 업무의 대부분은 유럽과 관련된 것들이라 매번 10시간이 좀 더 걸리는 긴 이동에 공항에서부터 지쳐버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가게 되어 고작 6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짧은 이동 덕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유럽행 비행기에서는 식사를 2번 받아먹는데, 동남아시아행은 거리가 짧아서인지 1회의 식사만 준비되는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의 가장 큰 낙은 기내식보다는 앞좌석에 붙은 조그만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쉬지 않고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이때가 아니라면 또 언제 쉬겠냐는 마음으로 작정하고 퍼질러진다.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엉덩이를 빼고 불량하게 앉은 채 맥주를 홀짝이면 특급호텔 호캉스가 부럽지 않다.
하지만 살짝 아쉬움이 드는 때도 있다. 식사를 받는 시간이다. 음식 맛을 따지는 것은 아니고, 내겐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설명 때문이다. 예전에는 종이 메뉴판에 간략한 설명을 써두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운영비 절감을 위해서인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담당 승무원은 좌석 간 통로로 카트를 밀며 승객들에게 음식을 전달한다. 이번에도 승무원은 내가 앉은 줄로 다가와 “치킨 오어 포크?”라며 간단한 질문을 건넸다.
나는 그 카트 안에 있는 닭이 다리살을 쓴 것인지 아니면 가슴살을 쓴 것인지, 또 돼지는 탕수육처럼 튀긴 것인지 아니면 수육처럼 삶은 것인지 그리고 각각의 양념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평생 다닌 영어 수업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어 질문은 머릿속으로만 청산유수고, 막상 입 밖으로 뱉으려면 마음과 다르다. 알파벳 ‘피’와 ‘에프’의 발음도 엉키고, 대화가 끝나 상대방이 ‘생큐’라고 인사를 하면 ‘유어 웰컴’의 화답 대신 덩달아 ‘생큐’라고 말해버린다. 옆자리의 두 사람이 음식을 고르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쓸 만한 영어 의문문을 떠올렸지만, 차례가 오니 결국 승무원이 먼저 꺼냈던 단어 ‘치킨’만 따라 말하고 말았다.
물론 단출한 이코노미석 메뉴에 반드시 대단한 설명이 있을 필요는 없다. 승무원에게도 비행 때마다 수백명의 승객에게 똑같은 문장을 읊어주는 것이 고된 일일 테고, 게다가 혹시라도 체질이나 병력,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로 먹을 수 없는 재료나 조리법이 있는 경우라면 미리 항공사 홈페이지나 고객센터를 통해 대체 메뉴를 정해둘 수 있으니 말이다.
미지의 치킨 요리를 접이식 식탁 위로 받아 은박지를 걷어 플라스틱 그릇 안 내용물을 확인했다. 매우 검고, 느껴지는 냄새보다도 훨씬 단맛이 강한 양념에 버무린 뼈를 바른 닭 다리살이 줄기콩과 함께 들어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한 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은 그 맛은 아무래도 맥주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영화 한 편과 함께 천천히 한 그릇을 비우며 생각했다. 다음 출장 때는 반드시 음식의 부재료와 양념에 관해 물어보는 문장을 적은 영어 단어장을 준비하겠다고.
민주주의의 상궤를 벗어난 권력은 시민들에게 깊은 피로감을 안겼다. 견제 없는 통치, 소통 없는 명령 탓에 사회는 갈등과 분열 속에 잠식되어 갔다. 갈라치기에 의한 극단은 일상이 됐고, 상식은 비정상으로 전락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남 탓으로 돌렸다. 정직하지 않았을뿐더러 인간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3년도 안 돼 막 내린 윤석열 정부의 통치는 ‘야만’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기였다. 윤석열은 공직자, 통치자의 기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채 권력을 잡았다. 그의 자질 부족은 단순한 개인의 한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막대한 고통과 혼란을 초래했다.
시작은 그럴듯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구호에 모두가 솔깃해했다. 많은 이들은 정치권 밖에서 온 인물이기에 기성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완전한 허상이었다. 얼마 안 가 공정은 왜곡됐고 상식은 실종됐다. 윤석열은 국정 철학을 정책으로 풀어낼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정책은 방향을 잃었고, 국정은 단편적 선언과 강압적 조치로 이어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윤석열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지배의 수단’으로 여겼다. 대통령은 초법적 존재였고, 자신과 정부를 비판하는 쪽은 모두 반국가세력이었다. 권력의 핵심에는 자신의 ‘친정’인 검찰 출신들을 꽂았다. 편중 인사, 정실 인사가 횡행했다. ‘법과 원칙’은 권력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했다. 그는 집권 내내 극우 유튜버들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 반국가·친북 프레임과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런 통치는 계층·세대·이념 갈등을 조장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헌법이 지탱하는 원칙들은 무시했다. 입법부와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조차도 ‘적’으로 돌렸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라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태도였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비판을 ‘왜곡’ ‘가짜뉴스’로 일축하며, 언론의 자유를 위협했다. 공론의 장은 축소됐고, 증오와 혐오의 언어가 정부의 메시지에 담겼다.
윤석열 정부는 겉으로 민주주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실상은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택했다. 통제와 불통, 충성 강요와 같은 부조리들이 중심에 자리 잡았다. 시민을 배제하고 사회 전체를 위축시켰다. 선출된 권력이 견제받지 않으면 어떻게 무소불위로 변질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비리 역시 권력의 노골적인 사유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배우자의 사적 활동이 공적 영역을 넘나들었지만, 아무런 제어가 없었다. 권력의 사유화를 넘어 대놓고 국정을 농단한 행위였다. 결말은 ‘위헌적 비상계엄’이라는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자 헌법 질서를 파괴한 범죄였다.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만장일치로 선고했다. 헌재의 결정문은 간결하면서도 분명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이며, 국회의 입법권 침해와 군의 동원 계획은 민주헌정 질서의 중대한 침해다.” 헌정사상 최초로 ‘계엄령을 통한 내란 시도’가 공식적으로 위헌 판단을 받은 순간이었다. 민주주의가 극단적 위기에 놓였지만, 이를 타개한 것은 무력도, 정치적 타협도 아니었다. 시민과 민주적 헌정질서가 ‘야만의 시대’를 종결시킨 것이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은 구속된 후에도 법 절차와 사법시스템을 우롱하고 있다. 특검 출석 요구에 일절 불응하고 재판조차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은 법 위의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윤석열은 지난 21일 자필 성명에서 “비상계엄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였으며, 나는 정치적 탄압의 피해자”라고 강변했다.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 제기되는 모든 법적 책임은 부당한 박해로 규정했다. 이는 지난 7개월간 시민들이 눈으로 확인한 현실과는 철저히 괴리된 자기기만이다.
야만은 단숨에 오는 것이 아니다. 무자격이 묵인되고, 무능이 방치되며, 무도함이 반복될 때 일상으로 스며든다. ‘윤석열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스스로 입증한 사건이다. 이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성찰해야 한다. 야만은 언제 어디서 그 추한 모습을 다시 드러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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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입니다. 여름은 참 이상한 계절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가 미워서 여름이 빨리 가 버렸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갑자기 가을이 들이닥치는 건 무섭거든요. 쌀쌀한 날씨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잖아요. 연초 계획한 일들을 잘 해내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고, 특별할 줄로만 알았던 올해도 결국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 씁쓸해지기도 하고요.
우린 살면서 참 많이도 돌아봅니다. 회상은 대부분 ‘-걸’ 또는 ‘-까’로 끝납니다. 그때 더 잘할 걸, 다르게 살아볼 걸, 왜 하필 나일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후회와 미련이 클수록 지난 일에 매달리게 되죠. 애니메이션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주인공 역시 그렇습니다.
영화는 호주를 배경으로 합니다. 젊은 여성 그레이스가 그의 반려동물인 달팽이 실비아에게 자신의 지난 날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돼요. 그레이스는 왜 달팽이를 반려동물로 삼았을까요? 이에 대한 답도 모두 그의 지난 삶에 담겨있답니다.
그레이스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그레이스는 쌍둥이로, 오빠 길버트와 함께 태어났어요. 엄마가 쌍둥이에게 동생과 오빠라는 선물을 각각 안겨주고는 출산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레이스는 온갖 병치레를 합니다. 의사가 ‘쳐다만 봐도 깨지는 도자기 인형’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죠. 특히 입술갈림증은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았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갈라진 입술에 대한 조롱을 듣고 괴롭힘을 당합니다.
달팽이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좋아하던 것이었어요. 그레이스의 엄마는 연체동물학자였거든요. 엄마의 보석상자에는 각종 달팽이 모양의 수집품과 달팽이 반지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더는 곁에 없지만 엄마가 남긴 달팽이들과 함께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레이스는 회상하죠. “난 불행한 편이었지만 잔이 반이나 찼다고 보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어.”
하지만 운명은 남매에게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남매의 아빠는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곡예사 일을 그만뒀습니다. 남매가 뱃속에 있었을 때의 일인데요. 그 후 아빠는 서서히 알코올에 중독됐죠.
아빠는 수면 무호흡증까지 생깁니다. 남매가 손뼉을 쳐 아빠를 깨워야 했죠. 그럼에도 세 가족은 함께 뭉쳐 이겨냅니다. 놀이공원에 가서 같이 롤러코스터도 타고요. 100년 된 롤러코스터라 삐걱댔지만 아빠는 “(내가) 죽으면 유해를 롤러코스터를 타며 뿌려달라”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워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하늘로 떠납니다. 남매가 아무리 손뼉을 쳐도 아빠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죠. 장례식을 치를 돈도 없는 어린 남매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화장합니다. 남매는 종이상자에 담겨 도착한 아빠의 유골을 검정 젤리빈 통에 옮겨 담습니다.
아빠도 엄마처럼 달팽이를 남겼어요. 뜨개질을 좋아하던 아빠가 직접 달팽이 모자를 떠줬거든요. 곡예사를 할 때 쓰던 공으로 눈알 두 개도 달아줬습니다. 그레이스는 그 모자를 마치 몸의 일부인 양 매일 착용합니다.
남매는 각자 다른 곳으로 입양 갑니다. 그레이스는 캔버라의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길버트는 퍼스 근처 과수원 가족에게로요. 그레이스의 양부모도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길버트의 처지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 과수원은 다름 아닌 사이비 종교였거든요. 종교를 가장해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동성애는 질병’이라며 가혹행위를 합니다. 남매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다시 마주할 날만 기다리지만, 어린 두 사람이 장거리를 오고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레이스에게 처음 친구가 되어주는 건 핑키입니다.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은 핑키는 일주일 만에 첫 남편을 잃었어요. 이어 황당한 사고로 두 번째 남편도 죽습니다. 커피와 생강주, 대마에 기대 살아가는 괴짜 할머니 핑키는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대단한 긍정은 아니고요. 핑키의 비법은 어제가 아닌 내일을 생각하는 겁니다. 핑키는 말해요. “삶은 되돌아보는 게 아니란다, 그레이스. 앞이 더 중요한 법이야.”
그레이스는 핑키와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으로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냅니다. 그런데 삶은 그레이스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길버트와 관련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뒤 남편과 헤어지고, 심지어 물건을 훔치다 붙잡힙니다. 운명이 사람이라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죠.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이어 아빠를 잃고, 하나뿐인 오빠와도 헤어진 그에게 계속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들이닥치니까요.
그레이스는 껍질 속에 숨는 달팽이처럼 집에 숨어버립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미친 듯이 달팽이 관련 물건들을 모으죠. 치유를 위해 겨울잠을 자는 달팽이처럼 일주일간 잠만 자며 나쁜 생각과 씨름하기도 하고요. 영화의 대부분은 이렇듯 그레이스의 연이은 불행에 관한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져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따뜻한 영화’라 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레이스는 이겨내기 때문입니다. 핑키는 그레이스에게 이런 말을 남겨요. “이제 너도 그 껍질에서 나올 차례야. 모으는 건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하렴.” 엄마 아빠가 남긴 선물이자 강박적으로 수집했던 달팽이는, 한편으론 과거를 계속 붙잡고 살게 만드는 것이 되어버렸던 거죠. 달팽이에 대한 집착은 곧 자기 연민의 수단이자 표현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마냥 불행하다 느꼈던 그레이스의 삶 뒤에는 사실 선물 같은 사람들이 든든히 버텨주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과 소소하지만 더없이 즐거운 순간들을 함께했고요. 어린 시절 입술 수술이 잘 안 됐던 거 기억하시죠? 그때 길버트가 수혈을 해주는데요. 사실 길버트는 수혈을 하면 본인이 죽는 건 줄 알고 있었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동생을 살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 오빠를 가진 그레이스의 삶이 제법 복되지 않나요.
이 영화는 완성까지 약 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모든 캐릭터와 소품, 세트 등의 작업을 사람의 손으로 했어요. 컴퓨터그래픽(CG)이나 인공지능(AI) 기술을 쓰지 않았다고 해요. 제작진이 점토를 빚어 7000여개의 오브제를 만들었고 13만5000여장의 사진을 이어 붙였다 합니다.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라고 불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탔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도 올랐고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핑키가 남긴 말로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이번 주말은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보다 다가올 날에 대한 기대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러닝타임 95분.
“우린 앞을 보고 살아야 해. 달팽이는 걸어온 길을 결코 돌아가지 않아. 오직 앞으로만 가지. 이제 온 세상에 너만의 흔적을 남기렴. 꼭 기억해.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마.”
강원 양구군에서 농사를 짓는 여모씨(61)는 2023~2024년 봄부터 가을까지 필리핀 출신 계절노동자 A씨(39)와 함께 일했다. 손발이 잘 맞아 편하고, 정도 들었다. 올해 봄에도 A씨가 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올해는 A씨와 함께할 수 없었다. 양구군에서 붙여준 통역이라 생각한 B씨가 소개한 C업체로 돈을 보내준 것이 문제였다. 알고 보니 B씨는 ‘불법 브로커’로 추정되는 사람이었고, 이 때문에 A씨는 양구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무엇보다 여씨가 C업체로 보내준 돈은 원래 A씨에게 가야 할 임금이기도 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와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는 30일 양구군에서 일했던 필리핀 출신 계절노동자 91명이 ‘불법 브로커가 가로챈 임금을 돌려달라’는 임금체불 집단 진정을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에 제기했다.
계절노동자는 농번기에 부족한 일손을 해외에서 데려오는 제도다. 25~50세 중 농어업 부문에서 1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계절노동자를 데려오려면 한국 지자체와 해외 지자체가 업무협약을 맺어야 한다. 노동자 모집, 선정, 송출 과정에 사인이나 다른 단체가 개입하는 것은 금지된다.
양구군도 필리핀 팡길시, 파에테시와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C업체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긴 것이 뒤늦게 필리핀 당국의 수사로 적발됐다. C업체는 2023년 노동자들의 임금이 필리핀으로 송금된 후 수수료를 받았고, 2024년엔 아예 수수료를 먼저 공제하고 노동자들에게 주라고 농가에 ‘공지’했다. 여씨도 B씨로부터 이 공지를 전달받고 A씨 임금에서 수수료를 떼어 C업체 대표 명의의 통장으로 보냈다. 임금체불 문제가 불거지자 필리핀 당국은 해당 지역의 계절노동자 송출을 중단했다.
외노협은 양구군에서 일했던 계절노동자는 792명으로 이들이 2년간 갈취당한 금액은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계절노동자로 일한 D씨(30)는 기자와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브로커로 밝혀진 사람을 믿었는데 우리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는지 몰랐고, 한국으로 갈 수도 없게 돼 너무 무력하게 느껴진다”며 “내 소득으로 아내, 두 아이와 아픈 어머니까지 부양하고 있는데, 매월 (수수료로 낸) 24만원이 더 있었다면 어머니 치료 비용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고용했던 농가 주인들도 ‘범법자’가 됐다. ‘임금은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직접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양구군 농민회는 업무협약을 맺은 주체인 양구군이 브로커에게 떼인 임금을 지급하고, 브로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한국에서 다시 일하는 것이다. D씨는 “한국에 가기 위해 농업 훈련도 받고, 면접도 봤다”며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폰테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