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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법률사무소 [책과 삶]활주로에 내리지 못한 179명…끝나지 않은 기다림
내용
의정부법률사무소 12·3 불법계엄만으로도 이미 뒤숭숭했던 지난해 말, 제주항공 여객기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무사 착륙하지 못했다. 계엄의 주범이 대통령직에서 탄핵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상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참사 유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슬픔은 빠릅니다. 너무 빨라서 쉽게 잊힙니다.”(정우신 ‘무안과 슬픔’)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작가 40명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 각자 1편씩 시를 써 엮은 것이 이 책이다. 198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열, 이문재부터 문학을 전공한 유가족 친척(김남주), 방송작가인 유가족(김윤미)에 이른다.
누군가는 잊었을 참사 사망자 수 ‘179’가 거듭 소환된다. 김명기는 여기에 제주 4·3사건 희생자 수 ‘214’를 더해 시 ‘이백십사백칠십구’를 썼다. 사고 현장이던 무안국제공항을 날아드는 새와, 지난 9월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이 겹쳐지기도 한다. “무안이 새만금을 살려낸 것이다.”(이문재 ‘우리가 달라져야’)
최지인은 “새 정부는 다를 거라고 했는데/ 기다리라고만 해…/ 인제 그만 나가달래”라면서 “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거야?”(‘무안에서’)라고 묻는다. 송경동은 공항이 15곳 있는 한반도에 신규 공항 건설 계획이 10개임을 지적하면서 “정치꾼들과 건설토호들의 이윤만 앞전이군요”(‘왜 새 떼들에게 책임을 돌리나요’)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 참사로 부모님을 잃은 김윤미는 ‘조각-죽음을 기록하는 여자’에서 참사 당일과 이후의 과정을 전하며 “179명의 이름/ 606편의 흩어진 조각/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자살. 누구보다 비통할 아버지를 공권력은 되레 살인범으로 몰아갔다. 증거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을 것이라는, 편견과 광기에 사로잡힌 여론만 난무했다. 짜맞춰진 시나리오에 따라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사형대에 올랐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는 팔다리를 강제로 늘리고 억지로 입안에 물을 들이붓는 고문을 받았다. 포박된 그의 몸은 사형집행관이 내리친 망치로 산산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버티면서 그는 자신이 무고함을 주장했고 자비를 구했다. “빨리 죽여달라”고. 1762년 3월10일 프랑스 남부도시 툴루즈에서 벌어진 장 칼라스 처형 사건이다.
가톨릭이 국교였던 18세기 프랑스에서 개신교(위그노)는 오랜 박해를 받았다. 가톨릭 교세가 강했던 툴루즈에서 개신교 신자인 칼라스의 아들이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민들 사이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개신교도인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뜬소문과 광신적 편견이 퍼졌고, 여론에 휩쓸린 툴루즈 고등법원은 돌이킬 수 없는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3년 뒤인 1765년, 프랑스 정부는 장 칼라스의 무죄를 선고했고 고통 속에 살았던 가족들에게 국가배상을 결정했다. 이 같은 결과가 이뤄진 데는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상식과 양심으로 반인륜적 국가 폭력을 고발했고 종교와 사법이라는 당대의 기득권과 맞서 싸웠다.
세계 지성사에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듯한 생동감 있는 서술로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인 이 책은 논픽션임에도 독특한 구성방식 때문인지 지난해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금 한국사회의 정치·사법적 정의의 실종에 대한 반면교사 역할을 수행하는 현재적 의미는 각별하다’는 것이 심사평이다. 또 이 책은 저마다의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확신은 정의인가 광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