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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주식사는법파는법 전력 구멍 난 채로…홍명보호 ‘미국행’ |
| 내용 | 주식사는법파는법 미국으로 떠나는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홍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일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 17명이 미국 현지에서 합류해 7일 뉴저지주 해리슨에서 미국을 먼저 상대한 뒤 10일 테네시주 내슈빌로 장소를 옮겨 멕시코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홍 감독은 이번 미국 원정이 월드컵이 열리는 현지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다. 현지 날씨와 경기장 등을 미리 점검하는 동시에 공동 개최국인 미국과 멕시코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이제부터는 검증 단계다. 월드컵을 앞두고 1년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선수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검증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 검증 대상들이 오롯이 정상이 아니다. 플레이메이커 이강인(24·파리 생제르맹)은 여전히 주전 경쟁에서 한 걸음 밀려나 있다. 이강인은 프랑스 리그1 낭트와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앙제와 2라운드에선 교체 멤버로 밀려났고 8월31일 툴루즈 원정 3라운드는 결장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 MVP 출신인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지난겨울 입단하면서 이강인은 중요한 경기 때는 선발에서 배제되고 있다.
수비수 김민재(29·바이에른 뮌헨)도 비슷한 처지다. 역시 이날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에 결장했다. 김민재는 직전 경기까지는 꾸준히 최소 교체 출전 기회를 얻었으나 요나탄 타에게 주전 자리를 뺏기면서 점점 벤치가 더 익숙해지고 있다.
홍 감독이 ‘캡틴’ 손흥민(33·LAFC)의 역할 변화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대표팀 공격과 수비의 핵심이 돼야 할 이강인과 김민재의 부진이 맞물리는 것은 반갑지 않다.
홍 감독이 이번 원정을 앞두고 가장 공 들여온 3선 조합은 목표까지 바뀌게 됐다. 원래 홍 감독은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하면서 황인범(29·페예노르트)의 짝을 찾고자 했다. 기존에 중용했던 박용우(32·알아인) 외에 옌스 카스트로프(22·묀헨글라트바흐)와 백승호(28·버밍엄 시티)를 번갈아 출전시킬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작 황인범이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낙마해 실험은 무산됐다.
황인범은 지난 3월에도 같은 부위를 다쳐 고민을 안겼던 터라 오히려 플랜 B를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황인범이 뛰지 않을 경우 이타적인 플레이가 능한 이재성(33·마인츠)과 공격적인 기여도가 높은 백승호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홍 감독은 황인범이 결장한 3월 오만전에서는 박용우와 백승호를 출전시키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포백으로 수비를 꾸린 반면 이번엔 스리백을 예고했다는 변수가 있다. 대표팀에 처음 합류하는 카스트로프 활용법까지 파악해야 하는 만큼 홍 감독에게 이번 미국 원정은 고민의 연속이 될 듯하다.
올 시즌 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군림 중인 한화 코디 폰세(31)가 또 새로운 역사를 썼다.
폰세는 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NC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7피안타 2볼넷 8탈삼진 3실점으로 호투하며 한 시즌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달성했다.
1회 맷 데이비슨을 3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폰세는 2회에도 김휘집에게서 삼진 아웃을 이끌어냈다. 3회에 이우성을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폰세는 5회에만 박민우, 데이비슨, 천재환 등 세 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 아웃으로 돌려세웠다. 이날 경기 전까지 220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던 폰세는 5회까지 6개를 추가했다.
이로써 폰세는 2021년 두산 소속이었던 아리엘 미란다의 한 시즌 최다 탈삼진 225개 기록을 넘어섰다. 국내 투수의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은 2022년 안우진(키움)이 기록한 224개다. 폰세는 안우진은 물론 미란다까지 넘어서며 프로야구 출범 이래 최고의 삼진 생산 능력을 자랑했다.
이날 대기록을 달성한 후에도 삼진 행진은 계속됐다. 5회 천재환을 잡고 신기록을 세운 뒤 마운드에서 한껏 포효한 폰세는 6회에도 2개의 삼진을 추가했다. 최고 시속 158㎞의 위력적인 직구와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을 앞세워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달성한 뒤 7회부터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
올 시즌 폰세는 삼진과 관련된 기록을 하나씩 경신해왔다. 지난 5월17일 대전 SSG전에서 8이닝 동안 삼진 18개를 잡아내 팀 동료인 류현진이 보유한 정규이닝 기준 한 경기 최다 탈삼진(17개) 기록을 깼다. 이어 8월12일 롯데전에서는 시즌 23경기 만에 200탈삼진을 달성해 역대 최소 경기 200탈삼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4년 전 미란다는 28경기에서 225개 삼진을 잡아냈다. 이날 경기는 폰세의 시즌 26번째 등판이었다. 폰세는 미란다보다 2경기 더 빠른 페이스로 기록을 경신했다.
폰세가 갖고 있는 기록은 삼진뿐만이 아니다. 그는 개막 최다 연승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지난 8월12일 대전 롯데전에서 개막 후 15연승을 달리며 최다 연승 신기록을 작성했고 지난달 28일 키움전까지 16연승을 했다. 이날 NC전에서는 5-3으로 앞선 채 마운드를 내려갔으나 불펜이 7회 동점을 허용하며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폰세는 탈삼진 부문 리그 1위는 물론 다승(16승), 평균자책(1.76), 승률(100%)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폰세가 1점대 평균자책을 끝까지 유지하면 2010년 류현진(1.82) 이후 15년 만에 1점대 평균자책 투수가 탄생한다. 각 부문에서 선두를 지킨다면 2023년 NC 소속이었던 에릭 페디 이후 2년 만의 투수 3관왕 이상도 노릴 수 있다.
전북대학교 연구진이 전 세계 204개국 약 13억 마리 소의 탄소배출량을 개체 단위로 산정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
전북대 동물생명공학과 이학교 교수팀은 1일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방법론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60년 축적 데이터를 토대로 소의 생산성과 온실가스 배출량 간 상관관계를 규명해 ‘K-모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클리너 프로덕션(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최신호에 실렸다.
소고기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하지만 산정 체계 부재로 ETS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연구팀은 “K-모델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어 농가가 생산성과 탄소 저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이미 이 모델을 토대로 세계 최초 ‘저탄소 축산물(한우)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국가 차원의 공식 산정 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CES 2025에서 개량판을 공개하고 국제 표준화를 추진 중이다. 또 전북도 축산연구소와 함께 지역 농가 단위 저탄소 축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저탄소 우량 암소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재영 교수(제1저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데이터로 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어 기후 대응의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학교 교수는 “한국이 세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제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 축산업의 탄소 저감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때 제노사이드 문제 시작‘빨갱이’ 낙인과 친일-반공 결합정권이 바뀌어도 끈끈하게 얽혀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
박정희 정부서 ‘반일’ 기치 접고노골적 ‘친일 정당화·반공 강화’권력 기억조작 맞선 민간 투쟁1970~1980년대 학생운동 토대5·18과 6월 항쟁 등 거치며 발전12·3 때 시민·군인 저항으로 연결
“친일과 반공이라는 두 권력의 뿌리는 긴밀하게 얽히며 해방 이후 80년간 하나의 권력 계보로 이어져 12·3까지 왔습니다. ‘친일’과 ‘반공’이 어떻게 처음 연결됐고, 기억의 회로에서 어떻게 끈질기게 작동해왔는지 국가폭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달 28일 ‘2025 현재사’ 6강을 진행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제주 출신으로, 민간인 학살 관점에서 제주4·3 사건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고, 이어 국내에선 처음으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박사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 검찰, 또 계엄을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이슈(12·3)와 관련된 모든 폭발적인 주제들을 다 공부한 셈이라고 본인의 배경과 연구 관심사를 소개하며, 강의의 3가지 핵심 주제로 이어갔다.
연결된 권력 계보, ‘친일-반공’
1945년 8월 해방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의 미 군정기는 해방은 됐지만, 독립은 되지 않은 시기였다. 강 교수는 이 기간을 “신탁통치 파동 와중에 친일파가 권력의 필요를 업고 반공세력으로 변신하며 성공적으로 친미로 전환한 시기”였다고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모스크바 3상 회담 하루 전인 1945년 12월27일 신탁통치에 관한 동아일보의 오보가 해방정국을 뒤흔드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보도했는데, 당시 미국의 원안은 미·소·영·중 4개국이 시정권을 독점해 5년 플러스 5년 연장으로 최대 10년간 신탁통치하자는 것이었고, 소련은 남북한 인구수에 비례한 조선인들의 대표를 통해 임시정부를 먼저 수립하고, 신탁통치 기간도 5년 이내로 해 임시정부를 통한 간접통치를 하자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보도와는 반대로, 실제로는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도한 것인데, 이 오보로 인해 소련이 신탁통치를 획책했다는 왜곡된 인식들이 퍼져 나가며, 반탁 운동이 반소·반공 운동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른바 ‘신탁통치 파동’으로 비화하며 좌우 갈등이 심화되는 사이, 미 군정은 통치 경험과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따라 우파를 선택했고, 친일파는 미 군정의 반공파트너로 재탄생했다. 강 교수는 “이 결과 대한민국은 탈식민과 친일 청산 기회를 상실했고, 1948년 제주4·3과 여순사건으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된 국가폭력
“정부 수립과 동시에 우리는 국가폭력·대량학살이 시작됐어요. 정부 수립 2개월 후 여순사건(1948년 10월19일~1949년 3월)부터 제노사이드 문제가 시작된 거죠.”
강 교수는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어마어마한 국가폭력들이 자행됐는데, 계엄법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 최초로 계엄이 선포된 것이 바로 여순사건 때였다”며 “군대가 민간인들을 어떻게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죽일 수가 있느냐고 생각하지만, 계엄으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제노사이드는 1949년 지리산 토벌,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로, 1953년까지 연속적으로 이뤄졌는데, 강 교수는 하나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이 같은 국면 전체를 하나의 제노사이드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강 교수는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려면 엄청난 분노와 적개심을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가령 특정한 집단을 반국가 세력이고 죽여야 하는 적으로 만들고(타자화), 그들은 악마니까 완전히 싹 쓸어야 돼(비인간화)라고 전제하고, 그다음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문턱들을 넘으며 대량학살까지(파괴) 가는 거죠. 대량학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총체적인 파괴를 지시하고 수행한 집단이 대량학살 사실을 부인하거나 공세적으로 정당화하는 ‘부정’의 단계까지 갑니다. 사실 우리가 독재정권 시대 내내, 심지어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부정이 됐던 거죠.”
강 교수에 따르면 1948년 제노사이드는 ‘빨갱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녀 아동까지라도 불순분자는 다 제거해라”라고 말하며 “빨갱이는 죽여도 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가 됐다.
이후에도 ‘빨갱이’, 친일-반공의 결합은 정권이 바뀌어도 끈끈하게 얽히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친일 관료와 반공 정보기관, 관변 조직(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등)이라는 삼각편대를 통해 1950년대 독재 체제의 원형을 완성했고, 박정희 정부는 이승만 정부가 표면적으로라도 표방했던 ‘반일’ 기치를 접고, ‘친일 정당화+반공 강화’라는 노골적인 결합을 드러냈다. 반공이 헌법적 가치로 격상됐고, 국가보안법과 헌법의 결합으로 완벽한 국가 통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친일파를 근대화 선구자로 재평가한 뉴라이트 논리가 등장하며 역사가 역주행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아예 학술적 포장도 벗어던지며 극우의 전면화가 이뤄졌고,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을 앞세운, 극우의 마지막 카드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권력의 기억조작 vs 민간의 기억투쟁
권력이 국민들의 기억을 조작해 국민 통제와 권력 다지기에 이용해온 이력은 뿌리가 깊다.
“1948년 9월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 이튿날인 9월23일엔 관동군 밀정 이종형이 주도한 반공구국총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친일파 청산법 다음날, 친일파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죠. 1949년 6월엔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요원 35명을 체포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중도·진보 의원들까지 대거 체포, 김구 암살까지 이어진 이른바 6월 대공세가 몰아쳤습니다. 이듬해인 1950년부터는 한국전쟁으로 학살 대상이 무한 확대됐고요.” 강 교수는 친일파의 대반격과 반공(빨갱이)몰이 여론전이 동시에 벌어지며 폭력 상황이 계속 확대되었다고 했다.
박정희 정부에선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친일’이라는 공적 언어는 소멸되었고, 친일파는 자유민주주의의 선구자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구축됐다. 이에 더해 교육과 문화를 통해 친일과 반공이 국민들 뇌리에 주입됐다.
그러나 권력의 기억조작에 맞선 민간의 기억운동도 시작됐다. 강 교수는 그 첫번째로 1966년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 출판을 꼽았다. 엄혹하던 시절에 문학이 역사의 공범이 될 수 있다며 친일 문인 20여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친일파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는 1970~1980년대 학생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고, 이후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며 기억투쟁이 본격화됐다. 1991년엔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 발족, 2009년 순수 시민 후원으로 이뤄진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이어졌다. 강 교수는 “친일 세력은 여전히 기반이 견고했고 반공주의 이념도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기억의 세대 전승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시민사회의 역량 축적과 함께 사회운동이 되어 침묵의 벽을 돌파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두환 정권은 1948년 제주와 같은 논리로, 5·18을 폭동으로 규정, 광주시민을 폭도로 낙인찍었지만, 진상규명 운동은 계속됐고 1987년 6월항쟁으로 폭발했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김대중 정부(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주4·3 진상규명), 노무현 정부(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 708명 선정)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란 말과 친일-반공 논리의 연원을 정확히 지적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반공냉전적 구도로 회귀했고, 12·3 비상계엄은 국회로,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의 저항운동에 막혔다.
“12·3은 공포, 절망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주었는데요. 권력의 기억조작에 맞선 80년간의 기억과 저항의 마음들이 흐름의 계보를 만들어왔던 것이죠. 임종국 선생님의 외로운 고발, 김학순 할머니의 떨리는 증언 등 작은 움직임들이 이어지면서 12·3 계엄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들, 군인들의 소극적인 저항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됐다고 봅니다.” 강 교수는 “앞으로 이런 흐름들을 주목하고, 더 발전시키고 구체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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